개혁주의 신학/청교도신학

중생(거듭남)

Yahweh Roi 2014. 1. 28. 11:00

중생(거듭남)

 

아더 핑크

 

아담의 타락한 후예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에는 큰 장애물이 놓여있는데 그것은 죄책(죄의 의식과 형벌에 속박당하는 것)과 죄의 권세(죄의 힘과 현존)의 속박이다.

이로인해 인간은 모두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이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으리이까!'라고 그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구원받는 방법을 명확히 하셨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해 죄책과 형벌, 죄의 세력과 현존에서 건짐을 받아야한다. 죄책과 형벌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통해서, 죄의 세력과 현존은 성령의 효과적 역사에 의해 가능해 진다.

중생한 자는 성화, 영화로의 길을 가지만 사람...이 아무리 성경을 철저히 읽고 연구하여 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해도 진리의 자그마한 통찰력 밖에 얻을 수 없다.

장님으로 태어나도 꽃을 가르치면 어느 정도 관념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탐구하면 진리에 대한 자연적 지식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인간은 영이 죽은 자와 같아서 자연으로서는 결코 영적인 일들에 대한 영적인 지식은 얻을 수 없다.

사람은 남은 잘 비판하지만 정장 중요한 자신의 문제에 대면했을 때 그것을 회피하려하듯이 복음의 진정한 도전 앞에서 자연인은 피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새로남이 없다.

복음은 감춰진 비밀이며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탐구도 헛것이지만 하나님은 죄로 어두워진 인간의 오성에 천국의 빛을 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하시길 기뻐하신다.

그래서 여러 직분들을 은사로 주신 것이다.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를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열매를 맺게 되며 성령께서 마음에 적용시키셔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구원은 기적인 것이다.

중생은 내가 구원받지 못했을 때의 나를 조금 고치는 것하고는 차원이 틀리다.

중생은 단순히 행동의 개혁만을 말하거나 마음을 바꾸거나 선한 삶을 살려는 의지가 아니고 완전히 위로부터 새로 태어남인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적 사역이시다.

중생은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사람이 알지 못한다.

 

중생의 본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라고 하셨다.

중생은 하나님의 역사인데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중생을 설명할때 비유나 말씀들에 국한시켜야하며 그것들을 구체화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위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신생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새로운 육체의 어떤 기능을 새로이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창조시에 완전한 존재로 지어졌고 타락시 어떤 부분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타락으로 영적으로 죽게 되었는데 이것은 기능의 멸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를 의미한다.

거듭나지 못한자의 두려운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타락시에 죄의 원리를 따라 살았는데 중생을 통해 새로운 원리가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실체(영화된 몸?,어떤 다른 개체?)가 된 것이 아니라 어떤 질적인 힘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죄악된 성품이 새로운 성품으로 변화되었고, 새로운 행동의 원리를 받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은 기능의 분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위해 살려는 모든 힘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을 통해서 새로운 영적 원리가 생기고 새로운 성품이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회복되게 된 것이다.

인격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동일하다 다만 죄인은 하나님을 향한 힘을 잃었고 중생한자는 하나님을 향한 힘을 얻은 것이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여기서 영은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인 '영, 육, 혼'의 영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온 성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에서 육도 그냥 육체가 아니라 부패한 인간의 성품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영과 육은 거듭는 상태의 성품과 거듭나지 못한 상태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생된 신자에데서도 죄의 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다만 새로운 원리에 의해서 신자의 기능을 지배하던 힘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는 죄와 싸우게 된 것이다. 무기력한 희생자가 싸운다는 것은 논리학에서 명사의 모순이다. 중생한 그리스도 전혀 무기력하지 않으며 그 마음에 죄를 능히 이길 힘을 부여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생각한다.

그가 보는 대상도 새 것이며, 그의 목적과 동기가 모두 새것으로 변화 되었다.

여기서 중생은 객관적인 변화가 아니라 주관적인 변화이다.

의인을 객관적 시각이라 한다면 중생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원리상 두가지 본성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본성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난 행동의 원리이며 성품이지 존재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성향과 성질과 경향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