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가?
이명화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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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외출할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잘 아는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함께 있던 한 사모님이 하는 말이 요즘 목회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모 상이 의사, 변호사, 교사, 간호사 등 전문직장 여성이라 했다. 자신이 사역하는 데 있어서 물질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물질 때문에 어려움 당하지 않고 목회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이점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나는 갑자기 남편한테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유능한 사모라면 남편 고생 않고 편안하게 사역하는 데만 전념할 수도 있을 텐데……. 갑자기 남편한테 진심으로 미안한 생각이 드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착잡했다. 그렇잖아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병폐 중의 하나라 생각하고 있었고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막막해서 덮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것처럼 답답해서 나름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특히 요즘처럼 목회자가 떼거리로 양산되고 있고 교회 개척이나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많은 가운데 있으니 더욱 더 그랬다. 목사는 목회 외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목회자의 사모는 목사를 대신해서 바깥에서 궂은일을 도맡아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을까. 사모가 돈을 벌지 않으면 무능한 사모로 보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병폐, 이것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 뿌리는 어디일까.
성경은 어떻게 말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뿌리 깊은 관료 의식(혹은 양반의식)이 숨어 있다. 이 문제 역시 알고 보면 한국인 속에 뿌리내린 허식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혹은 구약 성경에서 엘리야가 까마귀가 떡을 갖다 줄 때까지 가만히 로뎀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가지고 그런 것일까.
하지만 엘리야는 아합 왕의 체포령이 내려져서 지명 수배자로 숨어 있는 현실이었고, 또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일체 다른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따로 기업을 주지 않았기에 바쳐진 십일조로 생활해야 했던 경우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 사도는 1차 전도 여행에서 3차 전도 여행까지 모두 살펴보아도 그는 끝까지 자기 손으로 일하고 수고하면서 전도 사역에 힘썼던 것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의 최초의 편지인 데살로니가전서는 고린도교회에서 1년 6개월 동안 사역하면서 쓴 편지다.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 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9)고 말한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3~9절에서는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행전 18장 3절에서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하고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또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목회하고(3차 전도 여행)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에 초청(행 20:17~35)해서 3년 동안 자신이 어떻게 행했는지 말하고 있다. 그 가운데 34~35절에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가장 왕성하게 전도 활동을 하던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그때는 손수건만 만져도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났던 때였다. 그 후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로마 감옥에서 2년, 총 4년 동안 갇혀 있었던 관계로 일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쉬게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그의 손으로 수고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목회자의 사모가 희생양인가, '봉'인가
나는 가끔 목회자들이 교회와 가정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인 사모를 돈 벌러 밖에 내보내긴 해도 자신은 교회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아예 생활을 뒷짐 지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또 사모가 있어야 할 그 자리가 비어 있어 빈틈을 타서 다른 이성이 다가오고, 목회자와 문제를 일으켜서 교회와 가정 모두 시험에 빠져 고생하는 것도 보았다.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는 모든 여건과 환경이 주어진다면야 더없이 좋은 조건이고 사역의 행복일 것이다. 사역에만 전염할 수 있어 더 좋은 여건은 없다. 목회자의 행복이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목회의 뜻을 펼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한국교회 현실을 보면 여건과 환경을 두루 갖춘 교회들도 많은 반면, 작은 교회들이 더 많이 편만해 있고 거기다가 개척 교회, 미자립 교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와중에도 목회에만 전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생활을 위해 목회를 위해 두 팔 걷어붙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지난 2009년 2월 14일(토) <국민일보>에 '벼랑 끝에 선 빈곤 교회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X시의 모 교회 이야기였다. X시의 상가 지하 교회에 17년째 목회 중인 xx목사의 부인 사모는 "우리 힘으로 최대한 버텨 보려고 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목회도 생활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전화통을 붙잡았다"고 <국민일보>에 연락을 취해 도움을 요청한 사연이었다.
최근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로 교회 임차료(월 35만 원)을 5개월째 못 내고 있었고, 장년 성도 8명 중 5명이 경제 활동이 전무한 65세 이상 노인이라 목회 활동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사모는 10년 전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분식집 주방 보조와 파출부, 산모 도우미, 군고구마 장수 등을 전전하면서 생활비와 선교비를 충당해 왔고 3년 전부터 건강 악화로 일손을 놓게 되자 빚이 쌓이기 시작했고 빚은 4,000만 원으로 불어났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사모님은 목사님에게 빚을 갚을 동안만이라도 사역을 잠시 내려놓자고 했지만 내려놓을 수 없다고 했고, 사모님이 그동안 궂은일 하며 교회와 가정의 모든 경제적 어려움을 어깨에 짊어지고 왔는데 병이 나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뒷짐 지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을까. 사모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남편인 목사가 두 팔 걷어붙이고 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참 안타까웠다.
한 목사님의 경우는 또 어떤가. 신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 목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오랫동안 사역지가 없어서 흘려 보낸 세월, 현재 목사가 되어 무보수로 섬기고 있는 긴 세월 동안 아직도 그분의 아내는 식당 궂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다가 목사님이 사모님께 전화 통화를 하는데 아직도 식당 일을 하고 있고 지금은 야간 식당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사님은 무보수로 개척 교회를 섬기고 있고 모든 돈은 사모가 궂은일 해서 번 돈으로 헌금도 하고 차비도 하는 등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분과 저녁을 먹고 식사 값을 우리가 계산했다. 사모님이 힘들게 번 돈으로 밥을 먹을 순 없었다. 그 사모님은 평생 식당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와는 반대로 어려운 사역 환경 속에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사역하시는 분들도 많다. 내가 아는 한 목사님은 매일 저녁에 우유 요구르트 상하차 하는 일을 수 년 동안 해 오고 있다. 새벽 4, 5시 정도 되면 일을 끝내고 돌아와 부족한 잠을 잔다고 한다. 그리고 주일 예배, 수요 예배 등을 다 이끌어 간다. 그 어려움이야 말로 다 할 순 없겠지만 그런 힘든 여건 속에서도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본다.
목사인 동생 역시 공부하면서 담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가능한 시간을 생활을 위해 뛰고 있다. 군고구마 장사도 했고 편의점 야간 알바도 했다. 지금은 주중에 목회와 관련된 외부 사역을 하고 있어 그나마 안정되어 보인다. 내 남편 역시 노가다 전도사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몇몇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교회를 개척했다. 일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그의 주관은 이것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다.
김남준 목사는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회자 중 어떤 사람은 이전에 야구 선수였던 사람도 있고, 과학자였던 사람도 있습니다. 또 교수였던 사람도 있고 영화 감독이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의사였던 사람도 있고, 변호사를 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회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여전히 그 직업을 가지고 목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목회가 무엇인지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p.173)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신령한 영적 생활의 기초 위에 부어져야 할 자신을 이기는 진지한 열심과 변하지 않는 영혼들을 부여안고 몸부림쳐야 하는 해산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목회 사역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목회는 아무리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라도, 그가 아무리 말씀에 능하고 목양에 유능하다고 해도 아르바이트처럼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p.173)
물론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목회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또 자신이 인도하는(?) 양 무리를 어떻게 잘 영적 꼴을 먹이고 인도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전념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김남준 목사님이 말하는 대로 그것만이 답이라고 할 수 없다. 굶고 있으면서도 까마귀가 떡과 물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고 기도만 하고 있어야 할까.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오직 목회자는 사역에 전념해야만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목회자가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사역자의 아내로 살면서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역 환경이라면 그야말로 행복한 사역자이다. 하지만 개교회마다 어려움이 많다. 실제로 일본, 필리핀 같은 경우에는 성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역자들도 생활을 위해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개척 교회 목사님은 사모가 당연히 일을 해야 하고 돈 벌러 나가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아예 생활비도 주지 않았고 경제적 고문을 은근히 가하는 것을 보면서 저분이 정말 목회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뿌리 깊은 한국교회 목회자의 잘못된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겠는가.
사역자로서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면 더없이 좋고 또 그래야만 한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돕고 서로 서로 돕고 도움 받으면서 함께 성장해 간다면 더없이 좋은 한국교회의 모습일 것이다. 일단 그런 건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 사역자들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사모에 대한 잘못된 인식,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목회자 사모들은 상처투성이다.
신학교 공부, 목회, 생업 등 모든 것을 사모한테 맡기고 나 몰라라 목회만 한다는 것은 덕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건 아니라고 본다. 뻔히 교회 사정 어렵고 힘든데도 가만히 앉아서 있는 것이 상책일까. 어떤 교회는 목회자가 일하면서 이어 가고 또 어떤 교회는 사모가 일하고. 요즘 나는 그 문제가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과연 정답일까. 대안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낸 결론은 문제는 목회자가 일을 해야 하나 안 해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처지와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