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송영찬 목사

<욥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

Yahweh Roi 2017. 6. 17. 13:04

<욥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

 

송영찬 목사

 

욥기는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심오한 도덕적인 문제를 포함하며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욥기는 불행에 대한 해답과 원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욥기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욥기의 목적 중 하나는 인간의 고난은 인간 자신이 자초한 필연적인 결과이며 정의가 한결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기대하는 일반적인 견해에 도전하고 있다.

인간의 경험은 인과응보의 원칙을 당연시하는데 그 이유는 고난이 순전히 사람과 환경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응보의 원리는 성경의 공식적인 교리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하나님 한 분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보편적인 기대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결정론적 보응론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불의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은 언제나 승리하신다는 확신이어야 한다.

인과응보적인 견해는 죄를 지으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고난은 죄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욥의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반면에 욥기는 처음부터 욥이 사심없는 의로운 사람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인과응보적인 견해는 욥에 의해 철저하게 비난받는다.

또 다른 견해는 지혜에 대한 오해이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인생의 번영을 보장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성공을 거두었던 사람이 몰락했다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지혜에 대한 개념에 중요한 결함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는 달리 욥기 28장에서 지혜에 대한 찬양은 지혜에 대한 개념을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와 관련시키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련된 지혜를 떠난 일상적인 삶에 관한 지혜야말로 부질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욥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실상 자기가 지혜롭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은 폭풍 속에서 등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단락 되어진다(38:1). 사실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지혜롭다고 주장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앞에서는 누구나 회개와 복종이 있을 뿐이다. 욥은 이 사실을 고백한다(42: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태도는 현대 주석가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커티스(Curtis)는 욥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플랭크(Plank)는 폭풍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기진맥진해 있는 욥에게 오히려 불만스런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 학자들의 주장은 성경을 무조건적으로 해석하려는 덫에 빠지게 만든다. 이 점에 대하여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고디스(Gordis)는 지적한 바 있다.

세 친구들에게 대항하여 자신을 변호한 욥의 태도가 얼마나 옳은 일인가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하여 인내심이 없었다는 점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자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태도이다(Raymond Dillard). 하나님은 이런 태도를 보인 욥을 향하여 오히려 세 친구들보다 정당하다고 평가하신다(42:7). 이것은 자신의 회개를 표시함으로써 여호와의 말씀에 정당하게 응답한 욥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지혜를 배울 수 있다(Newell).

우리는 필연적으로 많은 고난을 겪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의로운 자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Hengstenberg). 이 고난은 하나님의 의로 인한 징벌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개선의 수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3:11-12)고 말했다.

나아가 의로운 자들에게는 십자가와 같은 고난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비록 외견상으로는 처절한 고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그보다 더 큰 행복이다(4:7).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벧전 1:11).

이처럼 욥기에 있어서 가장 현저한 것은 고난이 종교적인 체험을 통해 성숙한 인격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욥기는 고난의 체험이 영적 성숙에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치료적 능력은 마지막 수단으로 인간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의식을 체험할 때에만 인간의 인격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다.

욥기는 고난이란 문제에 대한 해답보다는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난을 통하여 영적인 성숙의 새로운 고지에 도달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누릴 최후의 영광을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