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작정에서는 “예지”(미리 아심)가 없고, 5장 섭리에서는 “예지”가 있는 차이를 아십니까?
3장2항 하나님께서는 예상되는 모든 상황들 가운데서 장차 일어날 듯한,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무엇이든지 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그는 미래의 일어날 일로, 또는 그런 상황들에서 일어날 것으로 미리 알았기(예지) 때문에 어떤 일을 작정한 것은 아니다.
5장1항. 만물의 창조자이신 위대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섭리로,(1) 정확 무오한 예지(豫知)와(2) 자유롭고 변함없는 자기 뜻의 계획에 따라,
2항. 제1원인이신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대로 만물은 변함없고 틀림없이 발생하지만,(1)
위의 두 표현 중 “예지”라는 표현이 작정에는 없고, 섭리에서는 있습니다. 이 두 차이를 이해하고 계신가요? 이 순서를 거꾸로 이해하면 알미니안주의가 됩니다. 중요한 차이점이기 때문에 잘 구별하셔야 합니다.
작정에서 예지를 말하는 방식과 섭리에서 예지를 말하는 방식을 많은 분들이 혼동하십니다. 작정에서 예지를 말하면 알미니안주의 방식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행위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아시고 작정한다고 말하면 인간의 의지가 역사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은 보조형태가 됩니다. 성경의 작정은 인간의 의지나 피조물의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기뻐하심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미리 아시고 작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차이가 도르트 신조에서 알미니안주의의 예지예정과 칼빈주의의 예정예지로 구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섭리에서는 웨민 5장에서는 예지와 작정으로 섭리가 일어난다라는 표현처럼 예지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섭리에서는 인간의 의지를 수단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의지적 행동에 대해서 미리아시고 인도하시는 예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섭리에서는 예지의 형태로 작정을 이루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악에 대한 행동에 대해서 후속적인 대응을 하시는 것입니다. 즉 선을 행하면 상을 주고, 악을 행하면 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예지를 통해서 인간의 인격적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방식입니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작정에서 예지를 넣으면 알미니안주의의 “예지예정”이 되고, 반대로 섭리에서 “예지”라는 개념을 넣지 않으면 인간의 인격적 책임을 다루지 않는 운명론처럼 됩니다. 하나님은 예지를 통해서 인간의 인격적 책임을 물으시고 살피십니다. 왜냐하면 섭리는 확정된 방식으로가 아니라 보존, 협력, 통치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신적작정은 불변한 것이며, 섭리는 작정을 성취하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섭리는 다양한 변화와 형태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웨민에서도 섭리방식이 “필연적으로”, “우연적으로”, “자유롭게” 나타난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섭리가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입니다. 인간의 의지를 섭리의 수단과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섭리에서는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라고도 말하고, 우리 기도 에 응답하셔서 방향을 바꾸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신원균 교수(한마음개혁교회,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회장,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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