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존 칼빈

절대적인 믿음(2)

Yahweh Roi 2014. 8. 30. 21:32

절대적인 믿음(2)

존 칼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하나님은 마치 한 마디 말씀으로 그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이 거룩한 사람의 마음을 찌르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부르심으로써 아브라함이 불과 얼마 전에 또 다른 아들을 쫒아내며 받은 상처를 다시 자극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손에 대한 어떤 소망도 남지 않을 미래를 내다 봅니다. 장자의 죽음도 끔찍한데 아브라함의 애통함은 어떠했을까요? 이어지는 말씀의 각 단어는 아브라함의 슬픔을 가중시킵니다. 하나님은 "네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단지 부성애만이 아닌 믿음에서 비롯된 사랑을 언급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본성이 시키는대로, 부모가 일반적으로 자식을 기뻐하며 사랑하듯 아들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에게서 하나님의 부성애를 보았기 때문에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부성애를 공격하신다기보다 하나님의 선의를 짓밟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영원한 고통에 처하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으로 가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고통은 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즉시 죽일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사흘내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죽일 일을 거듭 머리 속에 떠올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하면서 그 만큼 더 혹독하게 괴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을 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주할 장소에 대해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지체된 시간이 이 거룩한 사람을 마치 고문하듯 견딜 수 없이 잔인하게 괴롭혔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지체하심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분에 넘치게 지혜로워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우리의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함을 받도록 자신을 맡기는 것 외에는 마음에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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